여름 내내 에르메스의 Cuir d'Ange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문득 입생로랑의 Cuir가 궁금해져서 장롱 깊숙이 넣어둔 샘플을 꺼내 입어봤습니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레더라니 자해에 가까운 선택이었지만, 의외로 첫 인상은 진저와 럼이 주는 드라이하면서도 약간 달큰한 스파이시함이 앞장서서 레더가 과하게 치고 나오지 않더군요. 사프란 특유의 이오돈 뉘앙스가 살짝 스치고 블랙 티의 떫은 듯 부드러운 탄닌감이 받쳐주면서, 오스만투스와 타바코가 마른 가죽 위에 은근한 스모키 플로럴을 얹는 구조였습니다. 다만 삼십 도가 넘는 더위에서는 중후반 타바코의 스모키함이 체온을 타고 다소 무겁게 깔려서, 공기 중 습도와 맞물리면 코가 금세 피로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낮과 밤의 기온 차가 벌어지는 시기에는 아마 완전히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 같아 조용히 풀배를 들일지 저울질 중입니다. 더위에서도 레더가 폭주하지 않고 스파이시-우디 어코드로 균형을 잡았다는 점만으로도 입생로랑 현대 라인 중에서는 상당히 정직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