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슬슬 선선해져서 묵직한 우디 스파이시 계열 땡기잖아요. 그래서 아무아쥬에서 작년에 나온 Reasons를 결국 들였어요. 시향 없이 그냥 질렀는데... 음, 이거 호불호 확실하게 갈릴 거 같더라고요 ㅎㅎ
일단 첫 스프레이 뿌리자마자 느낀 건 진짜 강렬한 카다멈이랑 시나몬이에요. 달달한 계피가 아니라 거의 약재 느낌 나는 드라이한 스파이스? 핑크페퍼도 꽤 도드라져서 콧속이 따끔할 정도더라고요. 솔직히 이 단계에서 '어, 망했나' 싶었어요. 제가 원했던 건 좀 더 스모키한 깊이감이었거든요.
근데 10분쯤 지나니까 헤이즐넛이 슬금씩 올라오는데 이게 진짜 묘하더라고요. 고소하고 살짝 탄 듯한 너티향이 앞에 튀는 스파이스들을 좀 눌러주는 역할을 하는 느낌? 여기서부텨 살짝 구원받았어요 ㅋㅋ. 제일 재밌었던 건 캐시메란이랑 Cypriol이 깔리는 베이스였거든요. Cypriol 특유의 흙냄새 섞인 우디가 꽤 묵직하게 깔리면서 아까 그 약재 스파이스랑 합쳐지니까 꽤 독특한 분위기가 나오더라고요. 앰버리한 따뜻함도 있고 해서 확실히 가을에 어울리는 향이긴 해요.
근데 이 향은 진짜 상황 타는 게, 오피스 같은 밀폐된 공간에선 민폐향 될 확률 높아요. 확산력이 꽤 강하거든요. 제 기준에서도 첫 한 시간 정도는 좀 부담스러웠어서 손목이 아니라 무릎 뒤쪽에 뿌렸어요 ㅎㅎ. 그리고 이거 완전 플로럴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추천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문제는 플로럴 대신 스파이스가 너무 과해서 그쪽을 싫어하는 분들도 있을 거 같네요.
솔직히 집시워터 같은 시원한 숲속 갬성을 기대했다면 완전 실패할 향이에요. 이건 축축한 흙 내음 나는 가을 숲에서 모닥불에 통후추 굽는 느낌? 좀 더 원초적이고 투박한 느낌이거든요. 어나더13처럼 합성적인 머스크의 극단을 좋아하는 제 취향에서도 이건 다른 결의 독특함이라 신기했어요. 확실히 남들이랑 같은 향 질색하는 분들한텐 시향해볼 가치가 있는 향이긴 한데, 맹목적으로 사기엔 위험부담이 큰 거 같고... 차라리 2ml 샘플로 일주일 정도 써보고 결정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예요. 전 일단 30m 샀으니까 올가을 열심히 쳐입을 예정입니다 ㅎㅎ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