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카라멜, 피스타치오, 코코아. 이 정도 노트 배열이면 누구라도 포근하고 감미로운 미식계 오리엔탈을 상상할 법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분사 직후 핑크페퍼가 상당히 날카롭게 치고 올라오고, 나이지리안 진저 특유의 스파이시함이 가세하면서 예상한 부드러움은 자취를 감춥니다. 이 지점에서 '스위트' 어코드가 제 역할을 못 해주고 파우더리함과 뒤엉켜 다소 건조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어요. 피스타치오와 코코아는 몸통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바닐라의 크리미한 질감이 충분히 받쳐주지 못해 전체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인상이 남습니다. 2025년 출시작임에도 마치 2000년대 초반의 과도기적 오리엔탈을 보는 듯한 구성이라, 현대적인 밸런스를 기대하고 풀배 직진하기엔 다소 위험한 향수라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