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나온 No 5 L'Eau를 무척 기대하며 들였습니다. 오리지널 No 5의 뼈대를 현대적으로 가볍게 풀어낸 버전이라니, 평소 무거운 알데하이드를 부담스러워하던 분들께도 권할 만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웬걸요, 초반에 레몬과 라임이 톡 쏘는 통통 튀는 인상을 던져놓고는 정작 가운데서부터 오리지널 특유의 비누 향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겁니다. 네롤리와 베르가못이 주는 프레시한 느낌 뒤에 No 5의 유전자가 너무도 또렷이 자리잡고 있어서, 결국 '가벼워진 No 5'라기보다는 'No 5의 속살을 살짝 가린 향'이라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더군요. 저처럼 한때 오리지널을 탐구했던 사람에겐 이 어중간함이 꽤 오랫동안 적응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식 넘버링 라인을 유지하면서 변주를 허용한 샤넬의 보수적인 태도는 오히려 존중할 만하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