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자연히 묵직한 우디나 스파이시 계열로 손이 가기 마련인데,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엑스 니힐로의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를 꺼내 입어보았습니다. 2019년 출시 당시에는 리치와 피오니의 과즙감이 전면에 드러나는 지극히 여름용 프레시 플로럴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쌀쌀해진 요즘 공기에서는 페탈리아와 앰버, 머스크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텍스처가 더욱 또렷하게 잡히더군요. 핑크페퍼 특유의 드라이한 스파클링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오픈한 직후에 살짝 피어오르는데, 이 노트가 의외로 덥고 습한 여름보다는 낮 기온은 포근하되 바람은 선선한 요즘 같은 과도기에 훨씬 조화롭게 녹아듭니다. 드라이다운에서 퍼지는 무스크의 포근함이 약간의 흙 내음을 동반하며 전형적인 크리미 머스크와는 결이 다르게, 가을 코트에 배어드는 정도의 은은함으로 남아 전혀 가볍지 않은 인상을 남깁니다. 여름용으로만 분류하기엔 베이스의 우디 머스크가 꽤 탄탄하게 받치고 있는 구성이라, 얇은 니트나 트렌치코트에 매치해서 써도 전혀 부담이 없네요. 결국 플로럴 머스크 계열도 계절 타는 것은 아니고, 단지 공기의 습도와 온도에 따라 그 얼굴을 다르게 비추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