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중순을 넘기니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이맘때면 손이 가는 병이 몇 개 있는데, 그중 단연 첫손에 꼽는 것이 르 라보의 Gaiac 10 Tokyo입니다. 2008년에 도시 한정으로 첫선을 보인 후 지금까지 도쿄 독점 라인으로 남아 있는 향인데, 우디 머스크 계열에 파우더리한 질감을 입혀 놓은 구성이 참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디 노트는 직진형이라기보다 은근하게 바닥을 지지하는 형태라서, 뿌린 직후부터 분필 가루처럼 보송하게 올라오는 머스크와 파우더리 터치가 먼저 느껴집니다. 이게 묘하게 차분한 거죠 — 무게로 누르는 우디도 아니고, 달콤하게 휘감는 머스크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존재하는 향. 개인적으로는 재킷 안쪽에 한 번, 손목에 한 번 뿌리고 나면 당분간 다른 향수를 더 레이어링할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가을 저녁 산책길에 이보다 무심하면서도 정갈한 무드는 흔치 않다고 생각하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