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어김없이 꺼내게 되는 향이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이면 이 녀석을 한 번쯤 손에 쥐지 않을 수가 없지요. 세르주 루텐의 'Iris Silver Mist'는 1994년에 나왔으니 벌써 삼십 년을 훌쩍 넘긴 셈인데, 이토록 차갑고도 뼈대 있는 아이리스 향은 이후로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보송보송한 파우더리함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 흙을 털어낸 듯한 서늘한 우디와 당근 씨 특유의 쌉싸름한 기운이 지배적이지요. 마치 첫서리가 채 녹지 않은 이른 아침 정원처럼, 체온을 타고 올라오는 적막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향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