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습도가 잦아들면서 장식장 유리문을 열 일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오래전 사둔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를 꺼내게 됩니다. 1999년 출시 당시에는 프랜시스 커저디언의 이름값에, 차 향을 표방한 프레시 계열의 초기작이라는 점만으로도 꽤 주목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탑노트의 베르가못과 레몬이 톡 쏘듯 올라오고, 곧이어 민트의 서늘함과 오렌지필의 은은한 쌉싸름함이 한 겹 덮입니다. 흥미로운 건 루바브와 카네이션이라는, 지금 시장에서는 잘 보기 힘든 조합이 미드노트에 자리한다는 점인데, 덕분에 단순한 시트러스에서 그치지 않고 약간의 분필가루 같은 텍스처가 느껴집니다. 지속력은 솔직히 두 시간을 넘기기 어렵고, 요즘 니치 향수들에 익숙한 코에는 다소 평면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부담 없이 뿌리고, 냉방 바람에 살짝 올라오는 잔향을 즐기기에는 여전히 괜찮은 선택입니다. 가격 얘기는 굳이 꺼내지 않겠습니다. 좋은 향수는 가격순이 아니니까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