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신작 중 가장 궁금했던 걸 손에 넣었습니다. 휴고 보스 보틀드 비욘드입니다. 계열이 레더로 분류되어 있길래 좀 의외였어요. 보틀드 라인 하면 떠오르는 사과-시나몬의 달콤한 스파이스 구조를 생각하면 레더라니, 과연 어떤 식으로 풀어냈을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거든요.
받아서 첫 분사하고 느낀 건 '이게 레더라고?' 하는 당혹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레더 계열 하면 톰포드 오드 레더나 크리드 로얄오드에서 느껴지는 두텁고 태닝된 가죽, 약간의 동물성 터치를 기대하게 마련인데, 비욘드는 전혀 달랐어요. 진저가 먼저 올라옵니다. 그것도 생강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이 아니라 절인 생강에 가까운, 침이 고일 듯한 산뜻한 스파이시함이에요. 마치 초밥집에서 생강초절임을 집었을 때 코를 스치는 그 청량감을 향수로 옮긴 느낌입니다.
이 진저의 투명한 매운기가 가라앉으면서 레더가 은근하게 올라오는데, 이게 참 묘합니다. 일반적인 가죽 향이 아니라 갓 무두질한 누벅 가죽 같아요. 묵직하고 기름진 느낌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스웨이드처럼 보풀이 살아 있는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었을 때 나는 건조하고 부드러운 텍스처가 연상됩니다. 우디 노트가 이 레더를 바닥에서 받쳐 주는데, 샌달우드 계열 특유의 크리미한 단맛이 아니라 버지니아 시더처럼 바짝 말린 연필심 같은 톤이 섞여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정돈된 인상을 줍니다.
확실히 초가을에 어울리는 구성이에요. 보틀드 특유의 오리엔탈한 단맛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겠고, 묵직한 가을 시프레를 찾는 분들께도 너무 가벼울 겁니다. 반대로 '레더는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다' 하는 분들이라면 이걸로 입문해도 괜찮을 만큼 문턱이 낮습니다. 제 컬렉션에 이미 토바코바닐과 우드사틴무드가 자리 잡고 있는 입장에서는 무게감이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이 브랜드가 상업적인 디자이너 향수에서 이런 실험적인 노트 조합을 시도했다는 점 자체는 높이 살 만합니다.
다만 지속력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기대 이하입니다. 제 피부에서는 4시간 정도 지나면 스킨센트 수준으로 가라앉더군요. 뿌린 직후의 투명한 진저-레더 전환이 워낙 인상적이라 그 짧은 순간을 위해 풀배를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고민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디캔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향이라는 생각이에요. 물론 이건 제 취향과 컬렉션 구성을 기준으로 한 판단이니, 미니멀하게 몇 병만 두고 쓰시는 분들께는 오히려 부담 없는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