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라보 특유의 정제된 도시적 감성을 기대하고 오렌지 디스크리트를 시향했는데, 솔직히 실망이 앞섭니다. 2010년 출시작이니 브랜드의 방향성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 실험작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첫 분사 직후의 시트러스는 꽤 사실적인 오렌지 껍질의 쌉싸름함을 내지만, 이게 화이트 플로럴과 만나면서 급격하게 싱거워집니다. 흔히 말하는 여름용 시트러스의 청량감을 기대했다면, 이 쪽은 차라리 몸을 사린 우디 시트러스에 가까워서 답답한 느낌까지 듭니다. 지속력도 르 라보 답지 않게 3~4시간이면 피부에서 흔적이 희미해져서, 풀배를 고려하시는 분들이라면 더더욱 신중하셔야 합니다. 화이트 플로럴이 올라오는 중반부는 합성감이 제법 강하게 느껴져서, 자연스러운 시트러스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다가올 여지가 큽니다. 결론적으로 오렌지 디스크리트는 컬렉션의 한 자리를 채우기엔 다소 심심하고, 실사용으로는 존재감이 아쉬운, 여러모로 어정쩡한 포지션의 향수라는 인상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