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부쩍 밤공기가 쌀쌀해졌습니다. 여름 동안 앞쪽에 두고 자주 집던 시트러스 계열 병들을 뒤로 물리고, 깊이감 있는 향을 하나 꺼내 입었습니다. 올해 초에 들였던 헤레틱 파르퓜의 노스페라투입니다.
첫 느낌은 의외로 차갑고 투명한 플로럴입니다. 바이올렛과 아이리스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서늘한 파우더리함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데, 이게 일반적인 보랏빛 꽃 향수들과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흔히 플로럴 하면 떠올리는 달콤함이나 로맨틱한 느낌은 거의 없고, 마치 오래된 지하실에 핀 보랏빛 야생화 같은 차분함이 느껴집니다.
이 서늘한 꽃 향 바로 뒤에 페트리코르가 은근하게 깔립니다. 빗방울이 마른 흙에 떨어질 때 나는 그 특유의 미네랄리함과 오존 뉘앙스 말입니다. 보통 페트리코르 노트는 너무 티가 나게 처리되면 인위적인 합성향 같은 느낌이 들기 쉬운데, 여기서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바이올렛의 서늘함과 만나면서 촉촉한 돌바닥에 보라색 꽃잎이 흩뿌려진 이미지를 연상시키더군요.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나가모사의 우디함이 점차 올라옵니다. 사이프러스와 베티버 사이 어딘가쯤 되는 묵직한 나무 노트인데, 은은한 스모키함과 흙 내음이 섞여 있습니다. 이 나가모사와 앞서 말한 페트리코르, 바이올렛이 합쳐지면서 상당히 독특한 고딕 무드가 완성됩니다. 무언가 쓸쓸하고도 엄숙한 정취라고 할까요. 확실히 뱀파이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향입니다.
드라이다운은 앰브렛과 앰버의 따뜻한 스킨노트로 마무리됩니다. 초중반의 서늘하고 축축한 느낌이 이쯤 되면 체온에 녹아들며 부드럽게 정착합니다. 깊은 밤 와인 저장고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새벽녘 피부 위에 남는 잔향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네요.
지속력은 7~8시간 정도로 괜찮은 편이고, 확산은 팔을 뻗으면 은은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를 덧붙이자면, 이 노스페라투는 분명 잘 만든 향수지만 많은 이들에게 폭넓게 어필할 스타일은 아닙니다. 호불호를 떠나 일상에서 편하게 입기엔 무게감이 있는 편입니다. 시프레나 레더 계열을 즐겨 입으시는 분이라면 오히려 거뜬히 소화하실 수도 있고요.
가을밤 쌀쌀한 공기와 이 향이 만나면 제법 분위기 있습니다. 블랙 울 코트나 질감 있는 자켓에 잘 어울리는 향을 찾고 계신다면 한 번쯤 샘플링해보실 만합니다. 다만 따뜻하고 포근한 가을 향을 기대하고 접근하시면 첫 시향에서 당황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 점은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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