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출시된 겔랑의 조이외즈 튜베레즈를 오늘 개봉했습니다. 사실 이 병을 구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망설였어요. 겔랑의 튜베로즈 계열 하면 마이클 웡의 작업이 떠오르는데, 이쪽은 델핀 젤크가 조향을 맡은 작품이라서 기존 겔랑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갈리는 향수이기도 하거든요. 우드 사틴 무드나 MFK 바카라 루즈 540처럼 첫 시향부터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주는 구성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탑노트에서 바로 인지되는 것은 그린 노트입니다. 저는 튜베로즈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 크리미하고 마취성 있는 백합 비슷한 인돌 터치를 예상했는데, 조이외즈 튜베레즈는 오히려 자스민 삼박과 릴리가 중심을 잡으면서 상쾌한 녹색 잎사귀의 질감을 먼저 내보냅니다. 튜베로즈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긴 한데, 그 꽃의 달콤 살구 뉘앙스나 버터 같은 밀도는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어요. 대신 아침 이슬 머금은 정원에서 줄기를 꺾었을 때 나는 풋내와 흰 꽃세송이를 한줌에 묶어둔 듯한 청초함이 먼저 읽힙니다. 향수의 이름에 '즐거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도 어쩌면 이 무겁지 않은 첫인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샌달우드와 바닐라가 베이스로 깔리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이 이 향수의 분기점입니다. 여타 튜베로즈 향수들이 크림 같은 바닐라와 동물성 머스크로 꽃의 관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조이외즈 튜베레즈는 샌달우드의 건조한 우디함과 극도로 절제된 바닐라로 수분기를 조금씩 거둬냅니다. 결과적으로 최종 드라이다운은 화이트 플로럴이라기보다는 그린 우디 플로럴에 가까워져요. 제 진열장에 있는 프레데릭 말의 까날 플레르나 바이레도의 플라워헤드 같은 직설적인 화이트 플로럴과 비교하면 확실히 얌전한 편이에요.
이런 특성 때문에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마취성 강한 고전적인 튜베로즈를 기대하고 구매하시는 분들이라면 '이게 튜베로즈 맞나' 싶은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조향사가 튜베로즈의 동물적 본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맑고 푸른 흰 꽃을 만들고자 한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합니다만, 이 가격대의 겔랑 익스클루시브 라인에서 기대하는 '대체 불가한 서사'까지는 구축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향수 수집의 관점에서 보자면 병 디자인도 논쟁의 여지가 있죠. 겔랑의 벌 보틀과 별개로 나오는 이 사각 병은 실물의 무게감이나 캡의 피팅이 동급의 니치 라인에 비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제 진열장에서는 크리드나 톰포드 프라이빗 블렌드 사이에 두면 확실히 마감 차이가 눈에 띄더군요.
디캔으로 접근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이런 탑노트와 미들노트의 미세한 밸런스가 중요한 구성일수록 디캔 과정에서 향이 급격히 변질되기 쉽습니다. 튜베로즈와 그린 노트의 관계가 특히 산화에 취약해서, 풀배로 천천히 온도 변화 없이 보관하면서 노트 변화를 읽는 게 정석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 정도 투자를 할 만한 향인지 묻는다면, 저는 이미 튜베로즈 계열에 여러 병을 보유한 수집가가 아니라면 우선순위를 조금 낮춰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조이외즈 튜베레즈는 아름답고 얌전한 녹색 플로럴이지만, 튜베로즈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조금 모자란 인상을 지우기 어려운 향수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