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시아 얘기 나온 김에 오랜만에 꺼내서 뿌려봤어요. 장터에서 뒤적이다 반값 이하로 나온 거 업어온 놈인데, 솔직히 말해서 요즘 사람들 입맛에는 안 맞을 향이에요. 팩트는 이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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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베르가못이라고 적혀 있는데 시트러스 상큼함 이런 거 기대하면 100% 뒤통수 맞습니다. 뭔가 묵직한 알코올 쿠션 밑에서 베르가못이 살짝 스치듯 올라오다가 30초 만에 사라져요. 그 다음부터가 문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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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랑 자스민: 불가리안 로즈니 뭐니 해도 장미 향수 특유의 화려함이나 생화 느낌이 아니에요. 말린 꽃잎을 알코올에 우려낸 것처럼 텁텁하고 약간 시큼하게 올라옵니다. 자스민도 인돌이 거의 없어서 비누 냄새 같고, 이 두 꽃이 합쳐지면 할머니 화장대 서랍 냄새로 직결돼요. 이건 비하가 아니라 진짜 그런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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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 + 앰버그리스 + 샌달우드: 이 삼위일체가 바니시아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앰버그리스 특유의 짭짤하면서 동물적인 감촉이 앰버 단맛이랑 섞이는데, 샌달우드가 뾰족하지 않게 눌러주면서 전체적으로 퍽퍽한 파우더리로 마무리됩니다. 크리드 특유의 밀레짐 베이스 생각하면 안 되고, 훨씬 더 건조하고 둔탁한 올드스쿨 오리엔탈.
개인적으로 이 향수에서 가장 솔직한 부분은 앰버그리스 노트라고 봅니다. 재현된 앰버가 아니라 진짜 누군가의 피부에 오래 머금은 향수 잔향 같은, 체취 직전의 머스크와 앰버 경계선을 더럽지 않게 표현했어요. 문제는 이게 대중적인 매력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다는 거고.
실착 후기 덧붙이자면, 뿌리고 1시간 뒤에 와이프가 "옷장에 넣어둔 방충제 냄새 왜 여기서 나냐"고 물어봤습니다 ㅋㅋ. 당시에 제대로 빈티지 오리엔탈 안 맡아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저랑 비슷한 반응 나올 겁니다. 87년 출시니까 당연한 거고.
결론은, 바니시아는 남들에게 추천할 향수는 아닌데 크리드 역사에서 오리엔탈 계열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비교하려면 한 번쯤 맡아볼 가치는 있어요. 지금 시중에 풀린 건 거의 병행이거나 개인 리셀일 텐데, 백화점 영수증 없는 물건은 박스 상태고 배치코드고 무조건 의심부터 하시고. 이쪽 계열은 짝퉁이 그나마 덜 하지만, 크리드면 얘기가 달라지니까.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