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코너에서 2024년에 내놓은 Qissa Delicious를 2주 전쯤 시향하고 병입까지 고려했던 입장에서 몇 자 남겨봅니다. 통상 ‘구르망’ 하면 떠오르는 방향성은 벌꿀처럼 진득하게 눌어붙는 단맛 아니면 버터스카치처럼 따뜻하게 그을린 바닐라 베이스인데, 이 제품은 코코넛과 마시멜로를 전면에 내세워 다소 가볍게 풀어내려 한 시도가 엿보였습니다. 다만 그 시도가 성공적으로 체화되었는지는 좀 회의적이네요.
다크 초콜릿과 오렌지가 이끄는 초반부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보통 오렌지가 들어간 구르망은 껍질째 갈아 넣은 듯한 비터 스파크로 밸런스를 잡거나, 반대로 마멀레이드처럼 달콤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쪽은 생초콜릿을 씹었을 때 느껴지는 쌉싸름한 코코아 파우더의 결을 오렌지로 살짝 적셔놓은 느낌입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채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휘핑크림과 코코넛이 동시에 밀려들어오면서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휘핑크림 노트 자체가 워낙 가볍고 대량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다크 초콜릿의 쌉쌀한 질감이 순식간에 희석되어 버리고 결국 입안 가득 단순한 밀크 초콜릿 파우더를 머금은 듯한 인상만 남습니다.
제가 이 향에서 가장 아쉽게 느낀 대목은 자스민의 처리 방식입니다. 플로럴 프루티 구르망으로 분류되어 있으니 자스민이 들어간다는 점 자체는 놀랍지 않지만, 미드노트에서부터 자스민이 마시멜로와 만나면서 완전히 형태를 잃어버립니다. 마시멜로 특유의 뭉개지는 듯한 슈가 파우더리와 자스민의 인돌릭 그린이 만나면, 잘 다듬으면 베티버와 샌달우드처럼 은은하게 깔리는 베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제품에서는 그냥 ‘허옇게 가루 낀 꽃잎’ 정도로 뭉개져 버리더군요. 코코넛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전체적으로 합성 코코넛 크림 같은 인상이 올라와, 제 취향에서는 다소 값싸 보이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부분은 드라이다운에서 바닐라가 아닌 파우더리 어코드가 중심을 잡아간다는 점입니다. 보통 이런 류의 구르망은 바닐라의 따뜻한 잔향으로 마무리되며 ‘온기’를 남기는데, Qissa Delicious는 끝까지 마시멜로의 건조한 파우더리감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이걸 두고 ‘오히려 부담 없어서 좋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파우더리한 잔향이 휘핑크림과 코코넛의 잔여 유분감과 섞이면서 ‘말린 과자 부스러기가 피부에 남은 듯한’ 텍스처로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편하지 않았습니다. 60병 넘는 병들을 진열하며 꾸준히 사용해 보는 입장에서, 이 정도 구조의 향은 시간이 지나면 손이 잘 안 간다는 점을 경험상 알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피부 위에서의 반응이고, 오히려 일반적인 구르망 향수들보다 확실히 가볍고 달콤함의 강도가 낮다는 점을 매력으로 느끼실 분도 계시리라 봅니다. 니치 풀배만 모으는 성향이다 보니 제 기준선 자체가 높은 편이기도 하고, 디캔으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무게감이라 생각되어 병입은 보류했습니다. 2024년에 나온 신작 치고는 전개가 다소 평면적이고, 특히 중반부의 밸런스 붕괴가 아쉽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구성이긴 합니다. :)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