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오키드 EDP 특유의 진하고 퇴폐적인 오리엔탈리즘에 부담을 느꼈던 분들이라면 2015년에 나온 이 EDT가 오히려 반갑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과감하게 트러플과 과실향을 앞세워 상큼한 듯하면서도 어둡게 출발하는데, 이 무렵이 톰 포드가 접근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기라 그런지 오리지널보다 체온에 훨씬 얌전하게 밀착됩니다. 덕분에 블랙 오키드 특유의 축축한 우디와 흙내음은 꽤 멀리 밀려나 있고, 중심엔 일랑일랑의 부드러운 꽃내음이 오래 남아 애매한 균형을 잡지요. 차라리 ‘라이트 블랙 오키드’라 부르는 편이 정직할 만큼, 묵직하고 관능적인 원본의 그림자를 기대했다면 허무할 수 있습니다. 깊이보다는 레이어링용으로 한두 번 써보기에 무난하나, 이 가격에 이 반쪽짜리 화려함이 정당한지는 회의가 남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