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슬슬 더워지면서 여름 향 좀 뒤적이다가, 작년에 사놓고 두세 번 쓰고 묵혀둔 메종 마르지엘라 플라잉 다시 꺼내봤네요. 출시된 지 좀 됐지만, 2016년작치고는 아직도 리테일샵에 간간이 보이더라고요.
탑은 베르가못이랑 오렌지 블로섬, 페티그레인이 섞여서 터지는데 확실히 첫 인상은 시원합니다. 알코올 날아가고 1~2분 지나면 네롤리 에센스랑 아몬드 꽃에서 오는 은은한 달달함이 올라오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네요. 시트러스 아로마틱 계열이라길래 아쿠아디지오 초기처럼 톡 쏘는 청량감을 기대했는데, 그쪽보다는 한 템포 느린 전개예요.
미들 넘어가면서 일랑일랑이 꽤 또렷하게 올라옵니다. 화이트 플로럴 특유의 크리미한 질감이 베르가못의 산뜻함을 금방 덮어버려서, 30분쯤 지나면 시트러스라기보다는 플로럴무스크 계열에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여름에 가볍게 뿌리기엔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무게감이 있어요. 실내 냉방 빵빵한 사무실이면 몰라도,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길에 이거 뿌리면 한여름엔 좀 민폐일 것 같네요.
영업 나갈 때 두 번 정도 써봤는데, 상대방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부담스럽다는 느낌보다는 깔끔한데 좀 부드럽다는 평이 많았고, 여성분들한테서 은근히 괜찮다는 얘기 들었네요. 다만 제 기준에서는 확실히 애매한 포지션이에요. 소바주처럼 호불호 갈려도 존재감 확실한 것도 아니고, 블루드샤넬처럼 무난하게 두루두루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시트러스인 척하는 플로럴이라고 해야 하나. 그 간극에서 오는 어색함이 좀 있네요.
여름용 시트러스 찾으시는 분들한테는 솔직히 추천하기 어렵고, 차라리 환절기나 초가을에 가볍게 쓰는 게 맞는 향 같아요. 봄날 오피스룩에 은은하게 뿌리면 딱일 듯. 지금 같은 초여름 날씨엔 아침에 뿌려도 점심 지나면 잔향이 꽤 달아져서 계절 타는 느낌이 강하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