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반에서 1986년에 내놓은 Eau de Metal 한 병을 구하게 됬다. 병 자체가 희귀템이라기보단, 요즘 메인스트림 향수들에 절어 있는 사람이 이걸 맡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가 궁금해서 사봤다.
- 첫 스프레이: 일단 알데하이드가 확 올라온다. 톡 쏘는 느낌. 샤넬 No.5 같은 고전 알데하이드 플로럴과 비슷한 결인데,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 10분 정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시프레 베이스가 올라오는데, 여기서 '모시' 노트가 진짜 독특하다. 이게 흔히 말하는 깨끗한 린넨류하고는 다르다. 약간 차갑고, 약간 금속성. 이름값 한다. 화학약품 냄새가 아니라, 여름날 땀 식은 피부에 닿는 스테인리스 느낌. 시원한데 인간적인 체온은 없어. 그런 뉘앙스.
- 프레임 잡아주는 건 우디 노트. 흔하디흔한 삼나무가 아니라 좀 더 드라이하고 각진 나무. 오크모스 베이스가 확실히 시프레 뼈대를 잡아주고 있다. 요즘 IFRA 규제 걸려서 빼거나 대체하는 모스랑은 차원이 다르다.
결론은, 이거 2024년에 데일리로 쓰겠다고 덤볐다간 주변에서 '무슨 냄새냐' 소리 들을 확률이 높다. 칭찬 받을 향수는 절대 아니다. 팩트만 말하자면 이건 하나의 작품 혹은 시대를 보는 렌즈 같은 물건이다. 80년대를 관통했던 메탈릭, 쿨, 안티-플로럴 감성이라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한 사람 아니면 굳이 찾을 필요 없다. 일단 나는 갖고 있으니까 가끔 꺼내서 당시 조향사가 뭘 의도했을지 되짚어 보는 용도로 쓴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