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워지면서 시원한 향 찾는 사람들 많던데, 킬리안 보드카 온더락스 얘기가 슬슬 나오길래 디캔 돌려본 후기 올려요. 결론부터 말하면 시원한 향 찾고 이거 들어가면 반은 맞고 반은 헛다리 짚는 케이스입니다.
첫 분사하면 알데하이드가 확 올라오면서 차갑고 얼얼한 느낌이 들어요. 얼음 넣은 보드카 마실 때 코끝 톡 쏘는 그 느낌 살짝 비슷하고, 카다멈이랑 코리앤더가 같이 올라오면서 스파이시한 프레시 계열로 방향 잡아요. 여기까지는 확실히 여름용으로 쓸만합니다. 답답하지 않고 산뜻하게 터지거든요.
문제는 30분 넘어가면서 은방울꽃이랑 핑크 로즈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 조합이 생각보다 묵직해요. 상큼하게 끝날 줄 알았는데 꽃 비누 냄새 비슷한 게 은은하게 깔리면서 알데하이드 특유의 비눗물 같은 잔향이 계속 남아요. 여름에 뿌리면 초반엔 시원한데 중후반 가면 실내에서 뿌린 퍼퓸 미스트 같은 인상이에요. 루바브가 산미 잡아주긴 하는데 그게 꽃이랑 섞이면 새콤한 비누 향.
결론은 여기서 갈려요.
- 초반 시원한 톡 쏘는 보드카 느낌 좋아하고, 그 뒤에 잔잔하게 꽃향 올라오는 거 괜찮다? 여름 저녁이나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서 쓸만함. 확실히 일반 아쿠아나 시트러스보다 고급스러운 톤은 맞아요.
- 근데 시원한 거 기대하고 들어가면 중반부터 방향 틀어져서 당황할 수 있음. 저도 처음에 디캔 뿌리고 두 시간쯤 지나니까 이거 뭐지 싶었어요. 상쾌한 술 냄새로 시작해서 비누로 끝나는 기분.
팩트는 이 향이 아로마틱 계열이라 스파이시 허브랑 알데하이드가 뼈대고, 꽃이랑 루바브는 거기 살 붙이는 역할이라는 거. 시원함이 메인이 아니라 차가운 질감을 내는 알데하이드 위에 이것저것 얹은 구조예요. 그래서 여름에 뿌리면 뿌릴수록 '시원한 향수'가 아니라 '차갑게 시작하는 파우더리 아로마틱'이라는 느낌이 강해져요.
사실 저는 이거 풀배 살까 하다가 디캔 5미리 쓰고 접었어요. 초반 30분은 진짜 좋은데 그다음부터 제 취향이랑 멀어져서. 킬리안 특유의 재료감이나 톤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괜찮을 텐데, 여름에 가볍게 뿌릴 시트러스나 아쿠아 찾는 분한테는 비추입니다. 차라리 실내에서 오래 있을 때 한두 번 뿌리는 용도면 모를까, 밖에 돌아다니면서 뿌리면 후반에 은근 답답해요.
당근에서도 이거 가끔 보이는데 킬리안은 리필짝퉁 많아서 웬만하면 디캔부터 돌려보시길. 백화점 시향지만 믿고 풀배 갔다가 초반에 반해서 후회하는 향이 딱 이런 타입이에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