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을이라 묵직한 우디나 시프레 계열 알아보는 분들 많더라고요. 저도 얼마 전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 멜로그라노 시향했는데 솔직히 너무 순해빠져서 별로였거든요. 그렇게 방황하다가 라반에서 Invictus Elixir 신상 나온 거 보고 '어 이거 좀 특이한데?' 싶어서 바로 주문했어요.
사실 인빅터스 라인은 원래 좀 스포티하고 달달한 이미지라 기대 별로 안 했거든요. 근데 이번 엘릭서는 노트 구성부터가 범상치 않더라고요. 자몽이랑 미네랄 노트, 거기에 소금이랑 코코넛까지? 우디 아로마틱 계열에 코코넛이 들어간다고 하면 보통 크리미한 방향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이건 아니었어요.
처음 뿌리자마자 자몽이 톡 쏘면서 올라오는데 되게 신선해요. 그런데 거의 동시에 미네랄 노트랑 소금이 같이 올라오면서 시트러스가 확 짠바람 느낌으로 변하더라고요. 바닷가에 있는데 자몽주스 마시는 느낌? ㅋㅋ 여기까진 신선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10분쯤 지나니까 코코넛이 살짝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이게 진짜 웃긴 게 일반적인 코코넛 향이 아니라 마치 해변가에서 마른 코코넛 껍질 밟는 것처럼 텁텁하고 건조한 느낌이거든요. 달달한 코코넛 밀크나 선크림 같은 거 전혀 아님.
중간으로 넘어가면서 사이프러스랑 라벤더가 받쳐주는데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사이프러스 특유의 쌉싸름한 우디가 코코넛이랑 미네랄 노트의 짠맛을 잡아주면서 거의 암반 같은 느낌으로 수렴하더라고요. 라벤더는 진짜 은은하게 배경에 깔려서 아로마틱한 구조는 유지해주는 역할만 하고요. 확실히 플로럴이 과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요즘 향수들은 여기서 장미나 재스민 같은 거 억지로 끼워넣어서 망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런 거 없음.
베이스는 바닐라랑 우디, 미네랄이 남는데 바닐라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절제되어 있더라고요. 약간의 단맛을 부여하는 정도? 전반적으로 우디랑 미네랄이 지속되면서 꽤 오래 가요. 6시간쯤 지나도 옷에 남아있고 피부에서는 조금 더 빨리 날아가는 편.
다만 호불호는 있을 거 같아요. 미네랄 노트가 꽤 강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거 바다 썩은 냄새 아니야?' 할 수도 있고, 코코넛도 달달한 걸 기대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텍스처라서. 저는 흔하지 않은 코코넛 해석이라 마음에 들었지만, 르라보 어나더13의 비누 머스크 같은 걸 좋아하는 분들은 힘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제 지인 하나는 시향하고 '무슨 돌냄새 나' 이러면서 손절하더라고요 ㅎㅎ
가을에 뿌리기 딱 좋은 무게감인데, 전형적인 우디나 스파이시 계열은 아니라서 남들 안 쓰는 향 찾는 분들한테 추천할 만해요. 특히 집시워터 같은 가을 감성 좋아하는데 너무 흔한 거 말고 다른 거 찾는다? 이거 한번 시향해보셔도 될 듯. 가격은 10만원 중반대라 가성비는 그냥 무난한 수준이었고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