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계절이면 시트러스 향수를 찾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당연한 수순이지요. 무더위 속에서 무거운 우디나 오리엔탈 계열을 레이어링하는 것은 솔직히 말해 사치에 가깝고, 대부분의 시간은 가볍고 투명한 무언가가 몸에 얹혀 있기를 바라게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다시 꺼내 든 메종 마르지엘라의 플라잉은 출시된 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제 여름 로테이션에서 빠지지 않는 향입니다.
2016년 출시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 향의 첫 인상은 ‘상쾌하지만 차분하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프닝에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베르가못의 투명한 씁쓸함과 네롤리 에센스 특유의 비누 같은 청량감인데, 흔히 여름 시트러스에서 마주치는 레몬이나 자몽의 톡 쏘는 산뜻함과는 결이 다릅니다. 여기에는 페티그레인이 초반부터 상당히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단순한 과즙 터지는 느낌보다는 잎사귀를 비벼서 맡는 듯한 그리너스가 공기를 정돈해 줍니다. 덕분에 과하지 않고, 사무실이나 법정처럼 냉방이 강한 공간에서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무게감을 갖추었습니다.
미드 노트로 넘어가면 오렌지 블로섬의 꽃내음이 살짝 올라오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몬드 꽃이라는 다소 드문 노트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오렌지 블로섬이 꿀처럼 달거나 인돌릭하게 기울어질 수 있는 반면, 플라잉에서는 아몬드 꽃이 주는 분유 같으면서도 살짝 쌉싸름한 텍스처가 그 당도를 눌러 줍니다. 그래서인지 미드 단계에서도 전체적인 인상은 여전히 드라이하고 청량한 흰 꽃에 가까우며, 절대 휘발성 높은 여름 향수에서 흔히 나타나는 급격한 단맛 전환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이스로 내려가면서 드러나는 일랑일랑은 이 향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부분입니다. 일랑일랑 하면 보통 크리미하고 관능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 쉬운데, 플라잉에서는 그 특유의 바나나 같은 달콤함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고 대신 플로럴리티에 가까운 형태로만 잔향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속력 자체는 이 계열 향수들이 대개 그렇듯 길지 않습니다. 제 피부에서는 4시간 전후로 느껴지고, 이후에는 아주 가까이에서 맡아야만 체취와 섞인 잔향이 확인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타입의 향에 긴 지속력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기대라는 생각입니다. 시트러스 아로마틱은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라기보다는 순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도구에 가깝고, 플라잉은 그 역할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선에서 충실히 수행합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이 향을 두고 흔히 말하는 ‘비누 향’, ‘세제 느낌’ 같은 표현에 대해서는 저도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그걸 단점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스크나 과일 노트로 청결함을 흉내 내는 다른 프레시 계열과 달리, 플라잉은 네롤리와 페티그레인이 만드는 자연스러운 클린함이기 때문에 저렴한 세정제의 인상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깨끗한 리넨 셔츠를 막 다려서 입은 듯한 느낌에 가까우므로, 착용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취향만 맞는다면 여름철 데일리로 이만한 선택지도 드물다고 봅니다.
요즘 시장에는 시트러스 계열 신제품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묵직한 기본기에서 오는 신뢰를 더 높이 평가하는 편입니다. 발매된 지 오래된 모델임에도 여전히 마르지엘라에서 유통되고 있고, 공식 채널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한정판도 아니고 디스컨티뉴 염려도 없으니, 섣불리 여러 병을 쟁여둘 필요 없이 한 병 다 쓰면 다음 병을 구매하면 되는, 수집가 입장에서도 참 합리적인 제품입니다.
여름 향을 찾고 계신 분들 중에, 흔한 아쿠아틱 계열의 인공적인 청량감에 피로를 느끼셨다면 한 번쯤 시향해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무겁지 않고, 과하게 튀지 않으며, 그렇다고 존재감이 아예 사라지지도 않는 이 중간 지점을 오래 지켜온 향수는 생각보다 흔치 않거든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