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설날 한정판으로 출시된 매종 마르지엘라 레이지 선데이 모닝 루나 뉴이어 에디션을 뒤늦게 구했습니다. 원래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오래전 디캔으로 한 번 접해보고 흰색 플로럴 머스크 계열 특유의 깔끔함이 마음에 들었지만, 당시에는 우선순위가 밀려서 풀배를 보류했던 향이었거든요. 이 한정판은 병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서 기왕이면 특별한 패키지로 들이자는 생각에 구매했습니다.
탑노트는 알데하이드와 배가 동시에 터지면서 꽤 청량하고 달콤한 느낌을 줍니다. 은방울꽃 특유의 싱그러운 녹취가 가미되면서 일반판보다 살짝 더 밝은 톤으로 시작해요. 이 지점에서는 꽤 기분 좋은 프레시 플로럴입니다. 그런데 이게 20분 정도 지나면서 아이리스의 푹신함과 오렌지 블로섬이 섞이며 묘한 애매모호함을 만들어냅니다. 오렌지 블로섬 특유의 찐득한 달콤함이 배 과육의 청량감을 갉아먹고, 아이리스 파우더리함이 올라오면서 시트러스 프레시 계열의 샤프함이 흐려져요. 제가 기대했던 건 베이스의 머스크가 바디 라이크하게 스며들면서 섬유유연제처럼 정갈하게 마무리되는 구성이었는데, 의외로 로즈 노트가 중반 이후에 힘을 얻으면서 화이트 플로럴 뉘앙스를 한 겹 덧씌웁니다. 아마 오리지널 레이지 선데이 모닝을 선호하는 분들은 이 지점에서 이질감을 느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같은 가을에는 오히려 이 애매함이 나쁘지 않게 작용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묵직한 우디나 스파이시 계열로 넘어가기엔 낮 기온이 많이 남아있는 환절기라, 완전히 여름용도 아니고 완전히 가을용도 아닌 이 향이 미묘하게 걸쳐지거든요. 다만 전반적인 잔향과 실루지에 비해 지속력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오리지널 대비 무언가 더 나아졌다기보다 병 디자인에 의미를 둔 한정판인데, 그 병마저도 원래 레이지 선데이 모닝의 미니멀한 라벨 감성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레드와 골드로 포인트를 준 게 다소 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풀배를 들인 걸 후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장 가치를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에서 찾으려는 분이 아니라면 굳이 이 에디션을 찾기보다는 일반판 100ml를 구입하는 편이 더 합리적일 거예요. 향 자체는 오리지널의 미학에서 살짝 이탈해 있고, 이탈한 만큼의 변별력을 시원하게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저처럼 메종 마르지엘라 병 디자인 변주에 의미를 두고 컬렉션하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솔직히 말해 일반판이 낫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