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격적으로 더워지면서 여름용 시트러스나 프레시 계열 찾아보시는 분들 많을 텐데요. 저도 장마 오기 전에 가벼운 오드콜로뉴 하나 장만할까 싶어서 이것저것 시향하다가 펜할리곤스 No. 33을 만져봤습니다. 사실 이 집은 블렌하임 부케나 라욘 데트르 같은 쪽이 훨씬 유명하고, No. 33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라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일단 뿌리는 순간 느낌은 꽤 좋습니다. 베르가못이랑 자몽이 톡 쏘면서 올라오는데, 그 위로 아르테미시아 특유의 쓴 듯한 허브 향이 살짝 얹히면서 단순한 시트러스가 아니라 약간 성인 취향의 묵직함을 예고하는 느낌이에요. 탑노트 지속은 짧은 편이고, 얼마 안 가서 클라리 세이지가 중심을 잡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이 향의 본심이 드러나는데, 시원하다기보다는 아로마틱한 채소밭 같은 푸르름이 올라옵니다. 코리앤더가 은근하게 스파이시함을 보태고 사이프러스가 뾰족뾰족한 우디감을 더하는데, 이 조합이 생각보다 제법 무겁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향에서 가장 애매하다고 느낀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여름용 오드콜로뉴를 기대하고 접근하면, 탑노트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이 아로마틱 푸제르의 뼈대가 예상보다 훨씬 두껍고 진지합니다. 국내 여름처럼 찌는 듯한 습도에서는 오히려 답답하게 다가올 여지가 있겠다 싶었어요. 클라리 세이지와 코리앤더가 만들어내는 그 허브의 떫은 맛이, 냉정하게 말하면 통풍이 안 되는 한여름보다는 초가을 아침에 어울리는 결이더군요.
반면 이런 매력도 분명히 있습니다. 요즘 많이 나오는 가벼운 아쿠아 계열이나 단순 시트러스에 비하면 훨씬 더 태도가 분명한 향이고, 흔해 빠지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특히 이 향을 뿌리고 한두 시간 지난 후에 남는 잔향이 꽤나 정갈한데, 사이프러스가 메마른 나무 느낌으로 조용히 깔리면서 아침에 서재에서 책 펼칠 때 나는 냄새 같아요. 확실히 오래가는 편은 아니지만(이건 오드콜로뉴 농도라 어쩔 수 없는 부분), 사라지기 직전의 그 차분한 푸른 잔향이 의외로 마음을 붙잡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여름용 시원한 시트러스를 찾으시는 분께는 추천하기 어렵고요. 저처럼 가벼운 걸 바라고 다가갔다가 '어, 이건 아닌데' 할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다만 허브와 우디가 적당히 배합된, 조용한 아로마틱 계열을 평소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시향해볼 만합니다. 저는 아마 한여름에는 잘 안 쓰고, 초가을 첫 선선한 바람 불 때쯤 꺼내보게 될 것 같네요. 그런 계절에는 분위기 참 좋을 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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