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 디 파르마 로사 노빌레. 출시된 지 꽤 됬죠, 2014년. 저는 이 향수를 작년 봄쯤에 면세점에서 특가로 풀렸을 때 샀어요. 솔직히 아쿠아 디 파르마 특유의 깔끔한 시트러스 베이스에 로즈가 어떻게 녹아들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가격도 괜찮아서 큰 기대 없이 들였습니다.
첫 분사 느낌은 확실히 이 브랜드답게 톡 쏘는 베르가못과 만다린 오렌지가 반겨요. 여기까진 좋았어요. 문제는 5분도 안 돼서 올라오는 피오니랑 은방울꽃, 그리고 로즈. 이 조합이 생각보다 꽤 쨍하게 다가옵니다. 은방울꽃 특유의 그 알싸하고 약간 메탈릭한 느낌이 로즈의 단맛을 잡아먹으면서 꽃향기를 상당히 공격적으로 만들어요. 페퍼의 톡 쏘는 느낌까지 더해져서 초반에는 우아한 장미밭이 아니라 마트 화장품 코너에서 나는 날것의 꽃향기 같달까요.
그런데 진짜 이 향수의 문제는 베이스로 갈수록 드러나요. 분명히 플로럴 우디 머스크라고 나와 있고,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꽃향기 뒤에서 묘한 머스크가 받쳐줍니다. 그런데 이 머스크가 굉장히 심심하고 밋밋해요. 다른 브랜드처럼 뽀송하거나 스킨 향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그냥 초반의 착향을 좀 뭉개면서 희석시키는 느낌. 우디라고 할 만한 시더나 베티버의 묵직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그냥 싱거운 잔향만 남아요. 지속력도 제 기준으론 4시간을 못 넘깁니다. 정품 맞는지 다시 확인했을 정도로 실망스러웠어요.
결국 이 향수는 계절을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여름에 뿌리기엔 꽃향기가 너무 진하고, 가을이나 겨울같이 묵직한 시프레나 우디 향이 땡기는 계절엔 턱없이 가볍고. 봄날 야외 결혼식 같은 특정 상황 아니면 저는 도저히 손이 안 가더라고요. 백화점에서 시향지로 맡을 때는 몰랐는데, 옷에 뿌리고 하루 종일 겪어보니 저랑은 정말 안 맞는 향수였습니다. 팩트는, 아쿠아 디 파르마에서 꽃향기와 우디 머스크의 밸런스를 기대하시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거. 저처럼 샀다가 당근 보내는 일 없길 바랍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