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출시 당시 백화점 킬리안 부스에서 테스트했다가 결국 손에 들고 나온 병입니다. 지금 다시 꺼내 쓰며 느끼는 점은, 출시 초기의 기억과 실착 감각이 꽤 다르다는 사실이네요.
이 향은 이름부터 사람을 낚습니다. 머스크 우드라니, 당연히 깊고 어두운 우디 머스크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샌달우드나 시더 같은 묵직한 목재가 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더티하지 않은 백머스크가 얹어질 것이라 짐작했지요. 실제로는 전혀 다른 향이 올라옵니다.
첫 분사 직후에는 카다멈과 코리앤더가 레몬과 함께 상당히 자극적으로 톡 쏘는 인상을 줍니다. 아로마틱 스파이스 계열이 앞을 잡는데, 이게 상쾌하다기보다는 향신료 항아리를 갓 연 느낌에 가깝습니다. 알코올이 날아가고 5분쯤 지나면 아르테미시아 특유의 씁쓸하고 허브 같은 기운이 레몬의 산뜻함을 눌러 버립니다. 여기까지는 차라리 ‘스파이시 아로마틱’이라고 부르는 편이 정확할 겁니다.
중조로 넘어가면서 불가리안 로즈가 올라오는데, 문제는 이 로즈가 장미다운 달콤함이나 우아함을 보여주는 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마치 향신료에 절인 장미 꽃잎처럼 매콤하고 쌉싸름하게 펼쳐집니다. 사이프러스의 침엽수 뉘앙스까지 가세하면서 전체적인 인상은 차갑고 건조한 우디 아로마틱으로 고정됩니다. 이름에 걸맞은 따뜻한 머스크나 부드러운 우디 베이스는 이 향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베이스에 가면 그나마 머스크가 은근하게 깔리지만, 우디라고 부를 만큼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지속력은 6시간 전후로 준수한 편이나, 확산력이 상당히 강해서 사무실에서 두 번 이상 분사하면 옆자리까지 향이 닿습니다. 저는 첫 착용 때 두 번 분사했다가 오후 내내 본인 코까지 얼얼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로는 가슴 안쪽에 한 번, 혹은 손목에 반 번만 뿌리고 있습니다. 여름보다는 쌀쌀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데, 정작 여름에 뿌리면 향신료가 체온을 타고 더 날카로워져서 두통이 올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향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킬리안의 다른 라인, 예컨대 스트레이트 투 헤븐이나 블랙 팬텀 같은 쪽의 부드럽고 달콤한 잔향을 선호하는 편이라, 머스크 우드는 소장 가치로는 인정하지만 실착 빈도는 높지 않습니다. 다만 향신료와 로즈, 사이프러스가 만들어 내는 건조하고 예의 바르지 않은 인상은 분명히 개성이 있습니다. 이름만 보고 따뜻한 우디 머스크를 상상하셨다면 한 번쯤 꼭 시향해 보시길 권합니다.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나름의 이유가 있는 향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