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에서 작년에 낸 Her Petals. 솔직히 말해서 병 디자인 하나는 깔끔하게 잘 뽑혔어요. 근데 이 병에 꽂혀서 시향 없이 지르면 십중팔구 후회한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올리브영에서 7만원대에 풀려서 가격 부담 없이 샀다가, 딱 일주일 만에 손절각 나왔어요.
팩트는, 이 향수 노트가 Wild Berries, 자스민, 바이올렛, 앰버 이렇게 네 가지인데 이 조합이 상당히 위험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버버리 특유의 파우더리함이나 여성스러운 꽃향기를 기대하고 접근하면 안 돼요. 특히 오프닝에서 터지는 그 베리 계열의 새콤달콤함이 문제인데, 인공 감미료 잔뜩 넣은 딸기 사탕 냄새 비슷하게 와요. 10대들이 쓰는 립글로스 제품에서 나는 그 화학적 과일향 있잖아요. 그걸 굳이 성인용 향수에 이렇게 때려 박았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강렬합니다.
그나마 30분 정도 지나면 바이올렛과 자스민이 슬금슬금 올라오면서 좀 진정되긴 하는데, 이 전환 과정에서 저는 두통이 오더라고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 끼고 일할 때 이거 한 번 뿌렸다가 점심시간 전에 머리가 지끈거려서 바로 화장실 가서 닦아냈습니다. 바이올렛 특유의 그 보랏빛 파우더리함이 과일향 잔재랑 섞이니까 어디서 맡아본 듯한 싸구려 실내용 디퓨저 느낌이 난다고 할까요.
잔향은 앰버 덕분에 의외로 얌전하게 마무리돼요. 나쁘지 않은 베이스라 더 아쉬웠습니다. 이 앰버의 따뜻하고 살짝 우디한 느낌이 초중반의 난장판만 아니었으면 분명히 제 취향에 맞았을 텐데, 그걸 즐기기까지 견뎌야 하는 1시간이 너무 길어요. 지속력은 5~6시간 정도로 평범한 오드퍼퓸 수준이고요.
이 향수 칭찬하는 분들 보면 주로 봄날 데이트용이나 캐주얼한 자리에서 쓴다고 하던데, 저는 봄에 꽃가루 날리는 야외 카페 갔다가 이 향이 바람에 실려오니까 비염 도지면서 재채기만 열 번 했어요. 향 자체가 약하면 모를까 확산력이 좋은 편이라 내 취향 아니면 정말 괴롭습니다.
결론은, 버버리라서, 혹은 병 이뻐서, 아니면 가격 저렴해서 손대기엔 리스크가 큰 향수. 꼭 시향 먼저 해보시고, 특히 과일 노트에 예민하거나 인공적인 단내 싫어하는 분들은 근처에도 가지 마세요. 전 여친이 쓰던 향수 리필인 줄 알고 샀다가 코가 고생했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