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엔 시트러스 아로마틱 계열 오래된 녀석들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랑콤 O 뽀르 옴므(O pour Homme)를 결국 한 번 써봤어요. 요즘 같은 계절에 시원한 시트러스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초반 오프닝은 96년 출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열더라고요. 레몬이랑 베르가못이 상큼하게 톡 쏘는데, 여기에 현대향수에서 느끼기 힘든 싱그러운 풀잎 비린내 비슷한 그린 노트가 확 깔려서 오래됬어도 개성이 있구나 싶었어요.
팩트는 오프닝이 전부였다는 거. 30분도 안 돼서 우디랑 시트러스는 온데간데없고 그냥 묵직한 비누 냄새로 단조롭게 정리됩니다. 잔향이라고 남는 건 싸구려 알코올 잔재에 가까워서 여름에 입으면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갑갑함만 더해요. 쿨링감 하나 없는 노스탤지어 놀이. 디캔으로 3만원대에 구한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편집샵에서 얘가 재조명 받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여름 향 찾으시는 분들이면 이거 시험 삼아 들이지 마시고 그냥 차라리 아쿠아 디 지오 같은 기본기를 다시 보시는 게 훨씬 낫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