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장마 직전에 백화점에서 들였습니다. 사실 딥티크 향 몇 개는 지인 선물로 사주면서 시향지만 맡아봤던 터라, 이번엔 제대로 제 걸로 들여보자 싶었어요. 원래 무화과 향 하면 떠오르는 달고 부드러운 느낌, 코코넛 밀크 같은 크리미함을 기대했거든요. 그런데 처음 뿌렸을 때 코를 찌르는 건 달콤함이 아니었습니다. 잎사귀, 그것도 빻은 직후의 푸른 즙이 묻어날 것 같은 싱그러움이 먼저 훅 들어오더군요.
사실 첫 주에는 꽤 당황했습니다. 이게 그렇게들 좋아하는 필로시코스 맞나 싶을 정도로 그린 노트가 강하게 느껴져서, 여름 초입에 뿌리기엔 약간 우거진 숲 냄새 같았거든요. 코코넛은 달콤하다기보단 마치 껍질째 갈아놓은 듯한 텁텁한 고소함으로 깔려 있고, 은은하게 시더가 받쳐주는데 그마저도 묵직한 가구 냄새보다는 연필깎이 뒤에 남는 나무 부스러기 같았어요. 좋게 말하면 지적인 자연향이고,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채소 수프에 가까운 비릿함이 올라와서 외출 전에 한 번 더 망설이게 만들더군요.
그렇게 손이 잘 안 가던 걸, 지난주에 우연히 다시 꺼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 아직 여름 옷을 입고 있지만 공기는 분명히 가을로 넘어가는 그 타이밍에요. 팔뚝 안쪽에 한 번, 목에 살짝 뿌리고 집에서 번역 일을 보고 있었는데 세 시간쯤 지나 문득 제 몸에서 올라오는 잔향에 손이 멈췄어요. 처음의 잎사귀 향은 거의 다 날아가고, 무화과 과육의 은은한 단맛이랑 코코넛의 부드러움이 살짝 따뜻하게 남아 있더군요. 시더는 여전히 존재감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그래서 좋았어요. 향수가 나를 감싸기보다는 내 체온에 녹아서 나는 자연스러운 냄새처럼 느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이 향에 필로시코스를 입는다가 아니라, 필로시코스가 그 사람이 된다고들 표현하는 건가 싶었어요.
두통은 없었지만, 지속력은 EDP 치고는 긴 편이 아니에요. 제 피부에서는 네 시간 정도 지나면 거의 스킨향처럼 얇아집니다. 옷감에 뿌리면 조금 더 오래 가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하면 오히려 처음의 푸른 잎내음만 계속 맴돌아서 전 피부에 직접 뿌리는 쪽이 낫네요. 확산력도 강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에서 옆 사람이 알아챌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 취향에는 이 점이 좋아요. 향수는 조용한 취미여서 좋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이만큼 그 생각에 부합하는 향도 드물더군요.
호불호는 분명히 갈릴 겁니다. 특히 처음 시향했을 때 '이게 왜 인기가 많지?' 싶은 분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 제 지인 하나는 시향지 맡자마자 인상 쓰면서 "이거 풀 뽑은 손에서 나는 냄새 아니야?"라고 하더군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이 향에 대한 기대를 살짝 내려놓고,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자기만 느끼려고 뿌리는 거라면 꽤 오래 곁에 두게 될 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이 향이 없던 여름이 조금 궁금해지기까지 하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