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친구가 "여름엔 역시 클래식 시트러스지" 하면서 에르메스 오드콜로뉴를 한 번 써보라더라고요. 1953년에 나온 향수인데 지금 써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고. 그래서 호기심에 작은 샘플로 들여와서 출근 전에 테스트해봤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영업인으로서 아침에 이거 뿌리고 나갔다면 거래처에서 내내 신경 쓰였을 겁니다.
첫 느낌은 진짜 호쾌한 레몬이랑 베르가못이 확 터지면서 "아, 이거지" 싶었죠. 그런데 이게 10분도 안 돼서 바질이랑 코리앤더가 갑자기 치고 올라오더라고요. 이 허브 향이 생각보다 진해서 상큼함이 아니라 묘하게 짭짤하고 쌉쌀한 느낌으로 바뀌네요. 만다린이랑 망고 같은 달큰한 과일 노트는 거의 존재감이 없어요. 그냥 베르가못이 사라지고 허브 냄새만 남는 느낌.
영업 나가기 전에 거울 보고 넥타이 매면서 이 냄새 맡는데, 순간 주방 싱크대 위에 요리하고 남은 허브 찌꺼기 생각이 나더라고요. 물론 싸구려 느낌은 아니에요. 에르메스니까 원재료는 분명 좋은 거 썼겠죠. 근데 이게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향'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지속력도 생각보다 짧아요. 두어 시간 지나니까 거의 피부에 코 박아야 맡을 정도인데, 이게 오히려 다행인 게, 잔향이 좀 더 오래 남았으면 지하철에서 힘들었을 거 같아요. 약하게 남아있는 쌉쌀한 허브 잔향이 은근히 머리를 찌르는데 지속력이라도 길었으면 진짜 지옥이었죠. 지하철 밀폐된 공간에서 이런 쌉쌀한 아로마틱 풍기고 있으면 민폐 1순위일 거예요.
솔직히 이거 뿌리고 영업 뛰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확률이 높죠. 영업직은 향이 명함이라는 게 제 신조인데, 이 향수는 명함에다가 "저 쌉쌀한 허브 좋아합니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써서 주는 꼴이에요. 시트러스는 시트러스인데 청량감보다는 찐한 허브에 가까워서 여름에 시원하게 쓰겠다는 기대는 접는 게 좋고요.
그래도 이런 클래식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거예요. 재료 본연의 느낌을 살렸다거나, 꾸밈없는 허브향이 오히려 세련됐다고 느끼는 분들 있으니까. 그냥 제 기준에선 영업용으로는 절대 못 쓰겠네요. 만약에 주말에 혼자서 즐기거나, 취미로 향수 모으는 분이면 가끔 꺼내 뿌리는 정도는 나쁘지 않을 듯.
아, 가격은 백화점에서 정품 사면 15만원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정도 지속력이면 가성비는 솔직히 별로라고 봐요. 올리브영에도 없고, 그냥 에르메스 매장 가야 되니까 접근성도 좀 떨어지고. 여름 향 찾으시는 분들은 이거보다는 차라리 무난한 아쿠아 계열로 가시는 게 낫습니다. 소바주 뿌리고 다니다 욕먹는 게 낫지, 이거 뿌리고 다니면 "뭐야 이 쌉쌀한 거" 소리 들을 거예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