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직장 동료에게 선물 받아온 것을 제가 대신 개봉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병 디자인부터 마케팅 문구까지 전형적인 합성 플로럴 프루티라고 생각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목에 한 번 뿌리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탑노트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올라오더군요. 베르가못과 오렌지의 산뜻함이 먼저 느껴지고, 그 뒤로 네롤리와 자스민이 가볍게 얹히는 구조인데, 어느 한 노트가 튀거나 화학적으로 맴돌지 않아서 에이본 특유의 저가형 알코올감을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레드 베리와 피치는 피부 위에서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잔향의 단맛을 살짝 보조하는 정도라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제는 여름용 화이트 플로럴치고 잔향이 지나치게 오래 남는다는 것인데, 오전에 한 번 뿌린 것이 저녁 늦게까지 흰 셔츠 소매에 은은하게 남아 있어서 두통까지는 아니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더군요. 확실히 더운 날 실내에 오래 있으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타입입니다. 그래도 3만 원대 초반 가격에 이 정도의 블렌딩과 지속력이면, 쉬는 날 가볍게 쓰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60병 넘게 모으는 사람 입장에서는 굳이 이 한 병을 정식 라인업에 넣을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네요. :)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