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drat Enivrant. 아틀리에 코롱의 2013년작. 나름 시트러스 아로마틱으로 분류되는 걸 보고 무더운 여름을 견딜 셈으로 75ml 풀배를 구매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올리브영 할인가로 7만 원대 중반에 결제한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종이 시향지에 분무했을 때는 참 좋았습니다. 시트론과 라임이 시원하게 치고 올라오는 톱노트는 마치 모히토 한 잔을 코로 들이마시는 기분. 바질과 민트가 은근하게 받쳐주면서 단순한 레몬 사탕류 시트러스와는 다르게 약간의 스파이시한 뉘앙스도 살아 있었고요. 이 정도면 올여름 사무실 출근용으로 괜찮겠다, 가볍고 부담 없어서 동료들에게도 실례가 안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피부에서였습니다.
몇 시간 뒤 다시 꺼내어 손목과 쇄골 부위에 3회 분무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데, 10분도 안 되어 뭔가 이상했습니다. 베르가못과 라임이 사라지고 남은 건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톡 쏘는 합성 레몬향. 정확히 말하자면 시트론 세정제. 그것도 편의점에서 파는 노란색 주방용 레몬 세제 냄새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습니다. 바질도 민트도 주니퍼 베리도 사라지고, 남은 건 오로지 이 지독하게 인공적인 레몬 단 하나.
체질 탓일 수도 있습니다. 제 피부는 특정 합성 시트러스 계열과 만나면 이런 화학적 비누잔향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Bvlgari Man Wood Neroli도 저에게는 가글액 냄새로만 남더군요.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Cedrat Enivrant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우드 네롤리는 그래도 미들에서 살짝 우디가 올라오며 반전을 노리기라도 했는데, 이 제품은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1차원적인 레몬 세제.
지속력은 시트러스답게 짧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자 피부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더군요. 이건 이 향수의 단점이라기보다는 장르의 특성이니 감안하겠습니다. 잔향조차 남지 않으니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고요. 어차피 남을 잔향이라면 호흡기 자극만 주는 레몬 세제였으니까요.
실패담이라고 정리하겠습니다. 시향지에서의 첫인상만 믿고 풀배로 질렀다가 피부 화학과의 불협화음을 제대로 경험한 사례입니다. 시트러스 아로마틱을 찾는 분들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이 향수는 피부 발향 테스트를 꼭 거치셔야 합니다. 종이 시향지에서의 모히토가 피부 위에서도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저처럼 레몬 세제를 뿌리고 출근하고 싶지 않다면요.
그래도 용기는 예쁩니다. 지금은 진열장 구석에서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네요. :)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