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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록
향수 후기

허락되지 않은 정원, 그리고 무덤덤한 기후의 올리브

이 글은 Un Jardin à Cythère(Un Jardin à Cythère) 관련 후기와 커뮤니티 의견을 다룹니다.

풀배컬렉터J

2026-09-11 03:30:55.41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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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열린 형사 변호사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일정이 하루 남아 루브르 근처 에르메스 플래그십에 무턱대고 들어갔습니다. 사실 별 기대는 없었습니다. 최근 에르메스의 상업 노선이 지나치게 무난하게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거든요. 장 클로드 엘레나가 떠난 뒤로는 특히 공원이나 꽃밭을 산책하는 듯한 얌전한 수채화들만 이어진다는 편견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러 간 것에 가까웠습니다.

손목에 먼저 뿌리고는 오 드 루바브 에카를라트 병을 만지작거리며 30분쯤 흘려보냈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분명히 시트러스와 그린 계열의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제 코에는 지중해 어딘가의 척박한 돌산, 그것도 그늘 한 점 없이 바싹 마른 풀밭 이미지가 선명하게 잡혔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세련된 도회적 우디와는 거리가 멀었죠.

이 향수의 주인공은 피스타치오나 올리브로 추정되는, 지극히 건조하고 푸르기보다는 누렇게 바랜 듯한 나무 결입니다. 여기에 시트러스라기엔 산뜻함이 거의 제거된, 마치 레몬 껍질을 며칠 동안 그늘에 말린 것 같은 텁텁한 표면 질감이 얹힙니다. 생동감 있는 주스감이나 청량한 바람은 전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햇볕에 데워진 돌과 먼지, 그리고 마른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텍스처만이 반복됩니다.

가을을 겨냥한 우디라면, 적어도 저는 묵직한 베이스 노트의 단계적 전개를 상상하게 마련입니다. 아니면 쓸쓸함을 극대화한 차가운 시프레의 변주라도 기대하죠. 그런데 운 자르당 아 시테르는 무척이나 단선적입니다. 마치 타임랩스 영상으로 보는 올리브 나무의 일생처럼, 변화 없이 정지해 있는 이 느낌은 어떤 이에게는 명상적이고 평화롭겠으나, 제겐 오히려 향수로서의 기능을 반쯤 포기한 것으로 읽혔습니다. 지속력도 체감상 3시간 정도에서 급격히 소멸했고, 옷감에 남은 잔향은 거의 체취 수준으로 희미했습니다.

이 향이 겨냥한 키테라 섬의 신화적 이미지, 즉 금지된 정원이라는 콘셉트는 분명히 시적입니다. 하지만 향을 경험하는 제 입장에서는 그 시적 허용이 상당히 폐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바카라 루즈 540 엑스트레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의료용 고무장갑과 타고 남은 사탕의 공존이라는 낯선 언어가 오히려 열린 대화처럼 다가왔던 것과 대비되더군요. 이 정원은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조성된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그냥 디퓨저로 충분하지 않았을까"라는 불경한 생각을 끝내 떨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시중에 범람하는 합성 우디의 자극적인 베이스에 염증을 느낀 분들이라면 이렇게 철저히 인공미를 배제한 접근이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제게 있어서는 그 절제와 무표정함이 오히려 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일종의 후각적 공백으로 남았다는 점, 그리고 풀보틀 구매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200유로를 훌쩍 넘긴 가격표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기엔, 이 올리브 나무는 제 컬렉션에서 너무도 쉽게 숨이 죽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

추천 1

댓글 3

  • 향수는취미2026-09-11 14:59:14.288Z

    아, 이거 아마 '운 자르뎅 수르 르 닐 Un Jardin sur le Nil' 더 시향하시려던 중에 올리신 모양이네요. 저도 저 라인은 장 클로드 엘레나 시절 게 훨씬 정돈이 잘 돼 있다고 느끼는 편이라, 말씀하신 무난한 수채화라는 표현에 꽤 공감합니다. 초록 망고랑 당근 살짝 비친 초반부는 분명 흥미로운데, 이후 전개가 맑은 대신 밋밋하죠.

    5
  • 지갑은텅장2026-09-12 05:26:55.368Z

    ㅋㅋㅋ 저도 비슷한 경험 있음. 에르메스 최근라인 진짜 너무 안전하게만 간다는 느낌... 나도 작년에 운 자르뎅 라인 기대하고 시향했는데 진짜 이름값만 화려하고 향은 그냥 백화점 1층 입구에서 나는무난한 디퓨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당 ㅠ 장 클로드 엘레나 시절엔 그래도 '이게뭐지?' 하는 의문이라도 남겼는데요즘은 진짜 기억에남는게 없음. 올리브노트조차 자극 없이 무덤덤... 그게의도라면 차라리 르라보나 바이레도미니멀 계열이 더날카롭더라구요

    5
  • ㅁㄴㅇㄹ2026-09-13 02:53:55.377Z

    아 ㅋㅋ 이분 글쓰는 거 봐 문과임? 글에서 향이 맡아짐 나도 작년에 에르메스 매장 갔다가 테르 드 에르메스 시향했는데 진짜 말 그대로 무덤덤 그 자체더라 시트러스랑 베티버가 얌전하게 깔리는데 호불호는 없을 거 같은데 감흥도 없었음 ㄹㅇ 수채화란 표현 딱 맞음 근데 나는 지금 나이에 이 무덤덤함이 너무 심심해서 걍 나왔음 10년 뒤엔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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