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중고거래로 데이비드오프 쿨워터 병이 깨져서 오길래 멘탈 나가서 동네 향수 전문몰 가서 충동구매한 놈입니다. 노틸카 보야지. 2006년에 나온 우디 아쿠아틱이죠. 가격이야 뭐 말할 것도 없어요. 할인까지 받으니 3만원 언더. 네이버 쇼핑에서도 2만원대면 새 거 삽니다.
일단 스프레이 누르자마자 느낀 건 ‘이거 생각보다 정직하다’ 였어요. 사과랑 그린 리브스가 첫 인상인데 요즘 여름 향들처럼 달달한 캔디 사과가 아니고 껍질째 베어 문 약간 싱거운 풋사과 느낌입니다. 합성감은 있습니다, 당연하고요. 근데 그게 싸구려 플라스틱 냄새로 안 이어지고 오히려 오이 냉국 비슷한 서늘함을 만들어줘요. 결론은 알코올 날림 없는 차분한 오프닝.
5분쯤 지나면 로터스랑 미모사가 올라오는데 이 조합이 의외로 괜찮아요. 보통 저가향수에서 플로럴 들어가면 비누향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수생 식물 특유의 물비린내 살짝 섞인 싱그러움이 먼저 들어와요. 그래서 이 향에 남자들이 싫어할 만한 파우더리함이 거의 없어요. 딱 수련 잎사귀 한 장 물 위에 띄워놓은 느낌. 여름날 쇼핑몰 에어컨 바람에 살짝 스칠 때 꽤 기분 좋습니다.
시간 지나면서 베이스는 시더랑 앰버가 받쳐주는데 무게감은 제로에 수렴해요. 잔향은 거의 스킨 레벨에서 노는 수준. 팩트로 말하면 쿨워터보다 더 얇고 가벼워서 지속력은 3-4시간이면 휘발됩니다. 땀 많이 나는 날이면 이마저도 절반. 재도포 필수. 난 원래 지속력 짧은 놈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솔직히 이해가 가는 게 향 자체가 무게 잡으려는 시도를 아예 안 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셔츠 한 장 걸친 느낌. 실패담 하나 꺼내면 더운 날 바르고 외출했는데 두 시간 만에 내 피부에서 냄새 완전히 사라짐. 옆 사람이 향수 뿌렸냐고 물어봐서 약간 민망했어요. 근데 옷에 뿌리면 달라요. 면티에 한 번 뿌리고 입으면 5시간 정도는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듀프 얘기 잠깐 하자면 이 향은 듀프 찾을 이유가 없어요. 원본 자체가 너무 싸니까. 듀프가 오천원 할인해봤자 메리트 0. 그리고 이쪽 계열에서 듀프 제조사들이 자주 하는 게 아쿠아틱에 과도한 칼론 집어넣어서 수박껌 만드는 짓인데 그거 진짜 별로입니다. 노틸카는 그런 촌스러운 방향으로 안 갔어요.
다만 호불호 확실히 갈리는 포인트가 미모사 처리 부분이에요. 여기서 약간 금속성 비누 느낌이 올라온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실제로 시향지보다 살에 뿌렸을 때 체온 높은 분들은 이 미모사-로터스가 오히려 텁텁하게 변하는 경우도 봤어요. 나는 괜찮았는데 아내는 싫다고 하더라고요. 수건 냄새 같은 게 난다면서. 그러니까 꼭 사기 전에 시향해보시고 결정하세요. 올리브영에도 테스터 있으니까.
정리하자면 보야지는 여름철 데일리로 부담 없이 쓰기 좋은 향이에요. 가품 걱정도 없고, 이거 리필이나 짝퉁 만들 경제성도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 뽀대나 니치 감성은 하나도 없어요. 크리드 아벤투스 배치 비교글 쓰는 사람한테 이 향 들이밀면 ‘아 네...’ 할 겁니다. 근데 일상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죠. 등교나 출근, 운동 직후 샤워하고 편하게 뿌리기 딱입니다. 지속력과 확산력은 기대 버리고, 향 자체의 완성도만 보면 만원대 향수 중에서 기본기 가장 잘 닦은 녀석 중에 하나. 그게 결론.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