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학부 시절, 면세점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집어온 212 Silver 한 병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묵직한 우디 계열로 손이 가는 게 당연한데, 문득 이 향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꺼냈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걸 30대 후반의 제 피부에 뿌렸을 때의 괴리감은 상당했습니다. 만다린 오렌지와 자스민이 주는 첫인상은 여전히 경쾌하지만, 중반부터 올라오는 피오니와 머스크의 조합이 제 현재 체취와는 너무 동떨어져서 이질감이 들더군요. 아마 대학생 때의 얇은 피부와 체온에서는 저 머스크가 좀 더 청량하게 발현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다소 합성적인 단맛만 남아서 두통까지 살짝 왔습니다. 이건 향이 나쁘다기보다는, 분명히 '그 시절의 저'를 위해 만들어진 향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002년 출시 당시의 유스풀한 감성을 지금 제 나이에 재현하려 했던 시도 자체가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다시 서랍 속으로 돌아가야 할 향이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