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신품 하나 얻을 기회가 있어서 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저랑 코드가 안 맞더라구요. 제가 샤넬은 알뤼르 옴므 스포츠나 블루 드 쪽은 꽤 쓰는 편인데 여성향이어도 노트 구성 보고 오리엔탈 플로럴에 우디 베이스면 무난하겠다 싶어서 시도했거든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게 다가오는 향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첫스프레이에 올라오는 시트러스가 굉장히 건조하게 터져요. 베르가못이랑 만다린이 분명 들어갔는데 싱그럽거나 톡 쏘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설탕 절임한 과일 껍질 그늘에서 말린 듯한 질감이 먼저 들어옵니다. 거기에 핑크페퍼가 알싸하게 비강을 때리는데 이 시트러스랑 만나면서 약간 화한 느낌까지 올라와요. 초반 10분 정도는 '오 이거 의외로 괜찮은데?' 싶다가 중후반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말린 과일이랑 아이리스, 파출리 이 삼자구도가 진짜 독특하게 전개되는데 말린 과일은 자두나 살구 같은 느낌이고 분명 달콤해야 정상인데 이 향수는 단맛을 거의 억제해놨어요. 대신 파출리의 흙냄새 섞인 우디함이 달콤함을 덮으면서 끈적하지 않은 건조한 단맛이 나는데 여기다 아이리스 특유의 파우더리함이 끼어드니까 전체적으로 '화장품 냄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구요. 립스틱이나 콤팩트에서 나는 그 복합적인 지방산 냄새랄까. 자스민은 거의 실종 수준이라 플로럴 기대한 사람은 백프로 당황합니다.
착향은 시종일관 스킨 향에 가까웠고 확산력도 미미한 수준이었어요. EDT임을 감안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약했고 지속력은 3-4시간 정도? 옷에 뿌려도 크게 차이 없었습니다. 여름 실내에서 테스트했는데 땀과 섞이니까 파출리만 도드라져서 찝찝함이 올라오더라구요. 두통까지는 안 왔는데 계속 맡으면 코가 피로해지는 건 확실히 있었어요. 환기 안 되는 카페에서 이거 뿌리고 있으면 옆자리 사람이 '무슨 화장품 흘렸나' 싶을 겁니다.
예전에 면세점에서 알뤼르 센슈엘 EDP 시향했을 때도 비슷한 결이었는데 EDP는 그래도 바닐라랑 앰버가 받쳐줘서 좀 더 풍성하고 따뜻한 마무리였거든요. 이 EDT는 그런 후사도 없이 파출리랑 아이리스가 맨몸으로 싸우다 잠잠해지는 느낌. 차라리 팔라티노나 보이 미스테리유 같은 매니쉬한 우디 플로럴과 비교해도 센슈엘 EDT는 방향성이 너무 막연합니다. 샤넬 특유의 밀도 높은 우아함이 아니라 뭔가 덜 다듬어진 듯한 질감이에요.
혹시 구매 고려하는 분들 계시면 무조건 시향 먼저 하시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중고 거래에서 '샤넬 가성비 입문' 이런 식으로 올라오는 거 몇 번 봤는데 팩트는 그렇게 편하게 입문할 향수 아닙니다. 오리엔탈 우디 계열 좋아하고 파우더리 노트에 거부감 없는 분한텐 괜찮을 수 있겠으나 그 외에는 호불호 극명하게 갈려요. 저는 결국 얼마 못 가 손절했고 풀병 들인 걸 후회한 몇 안 되는 샤넬 중 하나로 남았네요.
이 글에서 언급된 향수